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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의 인터뷰 : 형

우리 형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월남하다가 붙들렸어. 여섯 명이 우리 집에서 자고 이남에서 한 사람이 왔었어. 형은 수학 머리가 좋으니까 월남해서 공부를 하려고 했었겠지. 그러고 아침에 떠났는데 다음날 내무소에서 가택 수색하러 왔더라고. 왜 그러냐고 하니까, 동무 형 어디 갔어? 하더라고. 전 몰라요 하니까 월남하다가 붙들렀어 하더라고. 근데 붙들려왔다는 것만 내무소에서 소식이 왔고 어디갔는지를 모르는거야. 나중에 알게되었는데 형무소에서 10개월정도 있다가 나온거야. 후에 일주일에 한번씩 내무소에 가서 사상교육을 받았어. 이제 고3이 되어서 대학을 가야 하는데 그때 김일성 대학이 새로 생겼어. 학교 선생님이 추천을 해줬는데 그러면 자서전을 써서 내야 해. 안될 줄 알았는데 합격해서 김일성 대학에 들어갔지...

파랑새

그 날은 새파란 하늘의 가을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빌딩 사이를 걷고 있는데 참새만큼 작은 새가 돌연 내 앞으로 날아들더니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듯 한참을 날갯짓을 하며 서있었다. 서있었다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날아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 새는 그 날 하늘보다도 더 새파란 색이었는데 어렸을 때 48색 크레파스에 있던 채도 높은 그 파란색과 같았다. 그런 색의 새는 엄마가 매일 틀어주던 동물의 왕국의 열대우림에서나 볼 수 있는 생김새였고 마치 벌새처럼 공중에서 정지하고 있는 모습이 신비롭고 놀라워서 나도 그 새와 함께 서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내 앞에 서있던 아니 날아있던 새는 눈으로 좇기 힘든 속도로 빌딩 숲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싹싹하고 살가운 그런 여자아이는 아니었다. 어느 날 큰아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기록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나의 일과는 집 - 작업실 - 꽃시장뿐이고 밖에 외출하는 일이 적어서 출사 나가기가 쉽지 않다. 아, 사실 핑계일 수도 있겠다. 나갈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일을 하다 보면 스스로 기회 만드는 것을 포기한다. 그래서 내 사진은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 일상적인 것들이 너무 좋다. 엄마랑 자주 공원에 산책을 간다. 하천길을 걷다 보면 꽃과 풀, 나무, 오리, 참새, 까치, 비둘기, 거미 그리고 고양이 등 살아있는 것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항상 보는 것인데도 신비롭고 귀하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설레고 눈에 다 담고 싶다. 카메라를 들고나가 나만의 기록을 시작한다. 남들은 관심 없이 지나치는 것에 나는 관심이 많다. 길가다가 쭈그려 앉아서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멈..

행복과 불안 사이에 선 당신에게

나는 행복과 불안 사이에 서있다. 어느 때는 행복에 더 가깝고, 어느 때는 불안에 더 가깝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다다랐을 때 내가 꿈꾸던 행복이 그곳에 있을 것 같지만 그 끝은 매번 모호하고 허무하다. 나는 엄마의 '나아질 것 같지? 근데 덜했으면 덜했지 좋아지진 않아. 똑같아'라는 말이 너무 가슴 아프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 나게 하는 말이다. 엄마의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하다가도 힘들어 지쳐버린 날엔 '엄마 말이 맞는 걸 지도 몰라'하고 인정해버린다. 행복을 찾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다. 물론 뒤돌아보면 10년 전보다 많이 앞으로 걸어 나오긴 했지만 그 걸음은 너무 미세해서 나는 느끼지를 못한다. 한 번씩 ..